코로나19로 집에 갇혀 재료도 떨어지자 작업을 이어가지 못해 너무 답답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작가는 집에서 보관하던 버려진 목재들을 꺼냈다. 목재를 쌓고 붙인 후에 화려한 원색을 칠했다. 자연을 닮은 점선은 라틴아메리카 민속 문양 같으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이 묘하다.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김윤신(87)의 작품 '합이합일(合二合一) No 902'(2020)다. 나무를 잘라 나누며 하나가 되는 작품을 뜻한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의 개인전 '지금 이 순간'이 8월 9일까지 성북동 갤러리 반디트라소에서 열린다. 한국·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고, 라틴·스페인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의 이전을 기념한 특별 초대전이다. 지난해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서 전시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홀로 지구 반대편 남미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택했다. 6·25전쟁을 계기로 고향인 원산을 떠나 홍익대와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전공하고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학교수도 됐다. 그러나 그저 거칠면서도 강한 아르헨티나 목재에 반해 1984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지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했다. 2008년 본인 스튜디오 자리에 '김윤신 미술관'도 열었다.
나무의 거친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 조각은 물론 판화와 조각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원색의 평면회화도 펼쳤다. 올해 주로 작업한 '지금 이 순간' 연작 23점은 우주와 인간 등 모든 것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표현했다. 화려한 꿩의 날개, 세포 등 자연의 원형을 확대한 듯한 추상이다. 나무처럼 결을 살리거나 나무를 가늘게 잘라 붙인 것 같은 착시 효과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캔버스에 붓으로 밑칠을 한 뒤 나뭇조각에 아크릴 물감을 묻혀서 선을 하나하나 찍어낸다고 한다.
작가는 "고향 원산 밤하늘의 별을 떠올리며 회화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이 순간 우주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최태만은 "김윤신이 추구한 주제는 동양정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며 "순간의 직관에 충실한 그의 작품은 생성의 환희를 압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순간은 영원과 만난다"고 밝혔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던 고 김국주 장군(상해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보좌해 항일독립운동을 했고 광복회 회장을 지낸 인물)의 여동생으로 평생 강렬한 생존 의지로 살았다. 1973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여하며 출품작 이름을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인들의 영원한 수호신'으로 붙였을 정도다. 한국여류조각가회를 발족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이한나 기자